“도둑이 돼가는 과정일까. 그래도 일기는 쓰면 죄를 용서받고 평온해지는 걸 느낀다.”
대형마트와 약국 등지를 돌며 갖가지 물건을 훔친 40대가 자신의 절도 행각을 일기로 남겼다가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최근 한달여간 각종 매장을 돌며 상습적으로 도둑질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절도)로 황모(41)씨를 구속했다고 10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황씨는 지난 2일 인천의 한 대형마트에서 도난방지용 체인으로 연결된 노트북을 니퍼로 절단하고 훔치는 등 지난달부터 최근까지 8차례에 걸쳐 잡지, 외장형 하드, 일본도, 타투액자, 영양제, 수저 등 250만원 상당의 물품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황씨는 물건을 훔친 뒤 일기장에 범행 내용과 물건을 훔친 이유, 심정 등을 상세히 기록했다고 경찰이 전했다.
황씨는 일기에서 “회사 입사 3개월 만에 회사 물품 절도죄로 해고됐다. 망신을 당하고도 여전히 난 백화점에서 작은 액세서리를 훔치고 서점에서 책과 필기구를 훔치고 살고 있다. 왠지 비싼 작은 것들을 돈 주고 사는 게 억울하게 느껴진다(2월19일)”고 썼다.
또 “금년 2월은 참 많은 물건을 훔쳐다 날랐다. 집안 살림살이가 꽤 풍요로워졌다. 자꾸 어디 가든지 뭔가를 갖고 오지 않으면 왠지 손해란 느낌이 든다. 이것이 도둑으로 변해가는 과정의 시작일까(2월28일)”라고 적었다.
황씨는 경찰에서 “물건을 훔치고서 힘을 하나도 들이지 않고 뭔가를 얻었다는 만족감 때문에 범행을 계속 했다. 일기를 쓰면서는 죄를 용서받고 평온해지는 걸 느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배터리가 없는 노트북을 팔려는 황씨를 수상하게 여긴 주인의 신고를 받고 출동해 황씨가 노트북을 훔쳤다는 사실을 자백받았고 이후 황씨 집을 수색하다가 방에 있던 일기장을 발견해 여죄를 추가로 밝혀냈다.
경찰 관계자는 “황씨가 일기장에서 고해성사처럼 범행 일기를 써 놓았다. 일기에는 도둑으로 변해가는 본인의 심정이 상세히 묘사돼 있었다”고 말했다.
<신소연 기자 @shinsoso> carrier@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