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금지구역(no-fly zone)’ 설정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대(對)리비아 제재 논의가 가속화되면서 궁지에 몰린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가 이집트와 포르투갈 등으로 특사를 파견해 지지를 호소하고 나섰다. 나토(NATOㆍ북대서양조약기구)와 유럽연합(EU)이 10일과 11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각각 리비아 사태를 논의할 예정인 가운데, 카다피의 특사도 브뤼셀로 향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유럽의 심장부에서 서방과 리비아 간 설전이 외교전으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나토ㆍEU 비행금지구역 설정 합의 난망=나토는 10일 국방장관 회의에서 리비아 사태에 대한 군사적 옵션을 포함해 모든 가능한 제재안을 논의할 방침이다. 그러나 회원국들의 견해차가 불거지면서 비행금지구역 설정에 대한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은 작은 것으로 관측된다. 9일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나토 사무총장은 24시간 공중 경보 체제 가동을 통한 리비아 해안 정찰 강화 계획 등을 거론하며 “필요 시 매우 촉박한 (군사작전) 통보에도 대응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리비아에 대한 군사적 개입의 민감성을 거론한 뒤 “어떤 행동이든 그 지역의 지지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매우 광범위한 지지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며 현 상황에서 “리비아에 대한 개입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AP통신은 나토 국방장관회의 참석차 브뤼셀에 도착한 미국 고위 관리의 말을 인용해 나토가 군사 개입보다는 인도적 지원과 관련한 합의를 도출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 관리는 “비행금지구역 설정이 옵션에 포함돼 있지만 회원국들은 먼저 유엔(UN)의 승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비행금지구역에 대해 “달성 가능하나 매우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드는 거대 작전”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미국은 9일 백악관에서 대리비아 제재 방안 논의를 위해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리언 파네타 CIA 국장, 마이클 멀린 미 합참의장 등이 참석하는 고위급 회담을 열었다. 이에 대해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9일 “아직 정책 결정 시점에 도달하지 않았다”며 이번 회의로 새로운 지침이 도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유럽 각국 역시 10일과 11일 EU 외무장관회의와 EU 정상회의 후 12일 아랍연맹과 회담을 통해 최종 입장을 결정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어 이번주 내 전격적인 군사 제재 조치가 단행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카다피 특사 브뤼셀로=한편 리비아 시위대에 협상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카다피 정부의 외교적 행보도 잰걸음 보이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9일 카다피의 특사가 리비아 사태와 관련한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 포르투갈 외무장관을 만났다고 보도했다. 루이스 아마두 포르투갈 외무장관을 통해 카다피가 10일 브뤼셀에서 열리는 EU 외무장관회의에 모종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포르투갈 외무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아마두 외무장관이 리비아 측의 요청에 따라 리스본의 한 호텔에서 리비아특사와 비공식 회담을 하고 리비아 사태 관련 상황을 보고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성명은 특사의 이름이나 회담 내용 등 구체적인 사안은 밝히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프랑코 프라티니 이탈리아 외무장관은 카다피 정부가 나토 장관회담과 EU 긴급 정상회의 등에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 브뤼셀로 특사를 파견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앞서 카다피는 둘-라흐만 빈 알리 알-사이드 알-자위 리비아군 소장을 이집트 카이로에 파견했다. 알-자위 소장의 카이로 방문은 아랍연맹 외무장관들이 주말 카이로에서 회동해 리비아에 대한 비행금지구역 설정 문제를 논의할 예정인 가운데 이뤄진 것이다. 이에 따라 그가 지닌 메시지가 비행금지구역 설정에 반대하는 카다피의 입장을 담고 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카다피는 리비아와 전통적으로 우호관계를 유지했던 그리스에도 모하메드 타히르 실라를 특사로 파견했다.
유지현 기자/prodig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