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꺼먼 쓰나미 몰려와
눈앞에서 노부부 휩쓸고
철망잡고 버티던 젊은이들
순식간에 집어 삼켰다”
일본 전역 피난민 30만명
추위에 떨며 지옥같은 나날
제방엔 흰천 덮인 시체 즐비
진흙 뒤지면 나오는건 시신뿐
쓰촨 대지진때 봉사자 활약
中여대생 실종소식에 안타까움
일본 사상 최악의 지진으로 사망ㆍ실종자가 수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가까스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극적인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안도와 안타까움을 동시에 전하고 있다.
삶의 터전이 파괴돼 대피소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시민들은 지진 발생 당시의 악몽 같은 기억과 전쟁 피난민과 같은 생활 속에서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지옥 같은 현장, 전쟁터 같은 대피소=이번 지진과 쓰나미로 집을 잃거나 방사능 노출을 우려해 대피한 주민은 일본 전역에서 30만명을 헤아리고 있다.
특히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가 발생해 피난 생활을 하고 있는 후쿠시마 현 주민들은 극심한 피로와 두려움을 호소했다. 미하루초의 학교 체육관 등에 위치한 피난시설 9곳은 주민 1800명으로 가득찼다. 피난민들은 크고 작은 질병에 시달리면서 의약품 등을 요구하고 있으며 담요, 음식 공급 등이 부족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후쿠시마 현 해변도시 미나미소마에 인접한 야마가타 현으로 빠져나온 한 여성은 트위터에 “후쿠시마에는 더 이상 연료가 없다”며 “연료를 후쿠시마로 보내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지진의 직격탄을 맞은 센다이 시에서는 떠밀려온 비행기가 나뭇더미 사이 땅바닥에 코를 박고 있다. 구조요원과 생존자들은 거리에 쏟아진 진흙과 파편, 뒤집힌 차량들을 치우려고 애썼지만 역부족이었다.
센다이의 한 주유소에는 주유 대기 차량이 2㎞ 넘게 늘어섰으며 한 슈퍼마켓에는 300명이 몰려들기도 했다.
쓰나미로 지역 전체가 사라지다시피한 이와테 현의 리쿠젠타카타의 생존자 1340여명은 학교에 마련된 임시 대피소에 머물고 있다. 이들은 추위에 떨고 있으며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울음소리도 새나왔다. 리쿠젠타카타에 사는 야마다 미치코(75) 씨는 “시커먼 쓰나미가 몰려와 내 눈앞에서 노부부를 휩쓸고 갔다”며 참혹한 순간을 전했다.
이와테 현 가마이시 시(市)를 찾은 교도통신은 찌그러진 자동차가 가정집 현관에 쑤셔박혀 있고 떠내려온 나무들이 상점 진열창에 처박혀 있다며 폐허로 변한 도시의 모습을 전했다. 자위대와 경찰관이 진흙 속을 뒤지며 생존자를 찾아나섰지만 발견되는 것은 사망자뿐, 제방에는 하얀 천으로 덮인 희생자 시신들이 즐비했다.
한 시민은 쓰나미가 덮쳤을 당시 해안가 도로는 대피하려는 사람들로 교통체증을 빚고 있었다며 “100대 정도 정체했을지 모른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아무것도 못한 채 휩쓸려 갔다”고 말했다.
요미우리신문은 미야기 현 미나미산리쿠 초의 사토 히토시 씨를 인용 “13m 높이의 쓰나미가 재해대책청사를 덮쳐 철망을 필사적으로 잡고 버텼던 30여명의 젊은이들을 순식간에 집어 삼켰다”고 전했다.
▶만삭의 몸으로 7시간 걸어서 귀가=도쿄에 사는 한 뉴질랜드 여성은 지진 발생 이후 대중교통 운행이 중단되자 만삭의 몸으로 25㎞를 걸어 귀가하기도 했다.
14일 뉴질랜드 헤럴드에 따르면 영어강사로 임신 8개월인 제니퍼 와담스 우즈키 씨는 7시간을 걸어서 집에 돌아왔다. 그녀는 마지막 5㎞는 골반과 다리에 통증이 오면서 달팽이처럼 기어가는 힘든 여정이었다고 밝혔다.
우즈키는 걸어가는 도중 음료수 가판대와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계속 마셔 탈수와 조기 진통을 막을 수 있었다. 우즈키는 밤 10시가 돼서야 집에 도착했으며, 일본인 남편도 그로부터 30분 뒤에 집에 들어왔다.
후쿠시마 현에서 15㎞ 떨어진 해안에서 지붕 조각에 의지해 표류하던 60세 일본인 남성은 13일 일본 자위대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됐다. 후쿠시마 현 미나미소마 시에 거주하는 히로미츠 씨는 지난 11일 쓰나미 발생 당시 물건을 가지러 집에 돌아갔다가 파도에 휩쓸렸다. 지붕 조각에 의지해 이틀 동안 표류했던 그는 자위대 해군에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다.
한편 지난 2008년 중국 쓰촨 대지진 당시 애인과 함께 자원봉사자로 활약했던 중국인 여대생이 이번 지진으로 실종됐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전해졌다. 13일 중국과 홍콩 신문들에 따르면 일본 도호쿠대에 유학 중인 진춘웨(23) 양은 연락이 두절된 상태다. 진 양은 쓰촨 대지진 당시 애인 뤄린(24) 군과 함께 자원봉사자로서 뤄 군의 부모 등을 구조한 바 있다.
신수정 기자/ssj@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