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전 대통령은 10일 회고록에서 비자금 사건 당시 본인이 관리하고 있던 총액(쓰고 남은 비자금)은 이자를 제외하면 원금만 2757억원(현금 1218억원, 기업주에 대여한 채권 1539억원)이라고 밝혔다.
비자금 사건은 1995년 10월 박계동 당시 민주당 의원이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신한은행 서소문 지점에 ㈜우일양행 명의로 예치된 110억원의 예금계좌 조회표를 제시하며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4000억원이 여러 시중은행에 차명계좌로 분산 예치돼 있다고 폭로하면서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자 노 전 대통령은 대국민성명에서 “재임 중 기업체로부터 5000억원 가량을 받아 사용하고 1700억원 가량이 남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수사과정에서 기업체로부터 3400억~3500억원을 받고, 1987년 대선을 위해 조성한 자금 중 사용하고 남은 돈과 당선 축하금(1100억원)을 합해 조성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또 1992년 대선에서 민자당 후보인 김영삼 총재에게 3000억원을 건넸다고 회고록에 기술했다. 이미 써버린 비자금과 퇴임 후 남은 비자금,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건넨 대선 자금까지 합치면 노 전 대통령이 조성한 총 비자금은 조(兆) 단위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비자금 조성 방법과 창구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내 재임시 시까지 여당 정치자금 대부분은 대기업들로부터 충당해 왔다. 5ㆍ6공화국 시절 정치자금 창구는 청와대로 단일화돼 있었다”고 했다.
그는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기업인들 면담 신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면담이 끝날 때쯤 그들은 ‘통치 자금에 써달라’며 봉투를 내놓곤 했고, 기업인이 자리를 뜨면 바로 이현우 경호실장을 불러서 봉투를 넘겨줬다”고 회고록에 적었다. 이 경호실장은 1995년 검찰에 자진 출두해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실체를 진술한 인물이다.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는 ‘이런 일들이 필요한가’ 하고 회의를 느낀 적이 있었지만 취임하고 보니 살펴야 할 곳이 너무 많았다”고 했다.
그는 “대선에서 모두 사용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큰 돈이 남아 깜짝 놀랐다”고도 했다. 이어 “김영삼 대통령 당선자가 청와대에 오지 않아 전해줄 수가 없었다”며 “새 정부가 6공 사람들을 ‘개혁’이란 이름으로 잡아들이는 상황이라 통치 자금 문제는 상의할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그래서 ‘모은 돈은 훗날 유용하게 쓰자’고 생각했다”고 기술했다.
조동석 기자/dsch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