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가계대출 중단을 선언했던 일부 은행들이 한발 물러서는 분위기다. 금융당국이 제시한 가계대출 억제 가이드라인을 과도하게 받아들여 사전 예고도 없이 일방적인 조치를 취한 나머지 시장과 고객들의 혼란만 초래했다는 비판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은행의 신규 가계대출 속도 조절을 지도했던 금융당국도 최근 농협, 신한은행, 우리은행의 대출중단 조치에 적잖이 당혹해 하며 “꼭 필요한 대출을 이뤄지도록 지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19일 오전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14개 보험사 사장들과의 간담회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서민 생계 대출은 이뤄져야한다”며 “우선순위를 따져 필요한 대출이 이뤄지도록 지도하겠다”고 말했다.
▶농협, 단위농협에 보낸 대출중단 공문 회수=전세자금과 일부 서민층 대상의 대출을 제외하고 가계대출을 전면 중단하라며 단위농협까지 지도공문을 보낸 농협은 지난 18일 밤 늦게 서민금융과 주택구입 등 용도가 확실한 대출은 승인하라는 내용의 수정 공문을 내려보냈다. 신한은행은 대출 중단 공문을 영업점에 내려보내려던 계획을 취소했다. 신한금융지주 한동우 회장은 19일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은행의 영업정책에 대해 회장이 관여할 일은 아니다”고 전제한 뒤 “갑작스럽게 대출을 중단해 당혹스러운 측면이 있으며, 좀 더 세심하고 세련되게 처리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 회장은 “일본의 경우 은행의 영업방침에 급격한 변화가 있을 때는 고객들에게 사전예고를 하는 등 경과기간을 둔다”며 계열사인 신한은행의 갑작스런 가계대출 중단 발표에 아쉬움을 표시했다. 한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선량한 고객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당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규 대출받기는 계속 어렵다=가계대출 중단을 선언했던 은행들이 ‘일보 후퇴’를 하더라도 앞으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는 굉장히 어려워질 전망이다. 당국이 제시한 가계대출 증가 목표치를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내용적으로는 사실상 가계대출을 중단하는 것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지난 6월말 정부의 가계부채 연착륙 대책이 발표된 이후 신한은행의 가계대출은 7월말 기준 63조8544억원으로 전월보다 6558억원(1.03%) 증가했다. 당국의 가이드라인인 0.6%를 넘긴 것이다. 8월들어서도 3200억원(0.57%) 늘어 위험 수위에 거의 도달했다.
농협의 가계대출은 7월말 기준 58조6000억원으로, 전월 대비 8000억원(1.38%) 증가했고, 8월에도 4700억원 가량 늘어났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도 7월에 전월대비 0.7% 정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추세라면 이달에 은행권에서만 가계대출이 4조5000억원 정도 늘어날 것으로 금융당국은 추산하고 있다.
이들 은행은 어떻게 해서든 가계대출 증가율 가이드라인은 맞추겠다는 입장이다. 이같은 방침대로라면 주택담보대출 중 만기일시 상환대출과 거치식 분할상환 대출은 사실상 중단될 전망이다. 신한은행은 지난 18일 고정금리 대출(금리안전모기지론)과 첫달부터 원금과 이자를 내는 비거치식 분할상환 대출을 제외한 주택담보대출을 이미 중단했다.
일반 신용대출도 웬만한 신용이 아니면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신한은행은 대기업 직장인 대상의 엘리트론을 막고, 신용이 양호한 공무원 대출과 닥터론만 유지했다. 농협과 우리은행 등 다른 은행 사정도 마찬가지다. 은행권 관계자는 “주택담보대출이든 신용대출이든 앞으로 대출은 본부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영업점에서 대출 승인을 내리지 못한다”며 “돈빌리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신창훈ㆍ김양규 기자 @1chuns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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