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6 정치인’ 그들은 누구인가
지난 1987년 ‘6월 항쟁’은 오늘 ‘486 정치인’을 있게 한,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촉발된 ‘6월 항쟁’ 결과, 전두환 전 대통령은 직선제(6ㆍ29 선언) 도입을 선언했고, ‘486 정치인’들은 ‘민주화 세력’이라는 ‘훈장’을 받게 된다. 군부와 독재에 맞서 민주화를 이끌었던 ‘전위 부대’로서 역사의 장에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이름을 올린 것이다.486 인사들이 본격적으로 정치권의 ‘러브콜’을 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0년대 초다. ‘6월 항쟁’ 당시 20대였던 대학생들이 사회 진출을 하고 30대가 되면서 정치권이 눈독을 들인 것이다. 소위 ‘학습’을 통해 습득된 역사 인식과 내부 토론으로 훈련된 ‘달변’, 그리고 진보이론을 무기 삼아 486 정치인들이 속속 정치권에 입문하기 시작했다.
486 정치인들의 가장 큰 업적은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으로 평가된다. 이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생에 역할(신계륜ㆍ고려대 총학생회장) 했고,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정치적 경호실장(유시민ㆍ서울노동운동연합 출신)을 자임하거나,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과의 정치논쟁에서도 ‘이슈’를 주도해나갔다. 친노 핵심인 ‘좌호철 우광재’ 가운데 이호철 전 민정비서관은 1981년 ‘부림 사건’의 주인공이었고,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역시 전대협 정책국장 출신이다.
오늘날 ‘486 정치인’의 외형적 성장은 ‘탄핵 역풍’이 휘몰아쳤던 지난 2004년 17대 총선 때 극적으로 이뤄졌다.
당시 열린우리당은 전체 의석 299석 가운데 152석을 차지했고, 이때 국회에 진출했던 운동권(전대협 출신) 정치인은 이인영 우상호 이철우 김태년 오영식 최재성 백원우 정청래 임종석 이기우 등 10명을 넘는다. 여기에 오영식 윤호중 등 전ㆍ현직 의원들까지 모두 합하면 20명을 훌쩍 넘는다.
특히 노무현 정부 시절 추진했던 ‘4대 입법’ 개정은 오롯이 ‘486 정치인’들의 작품으로 평가된다. ‘4대 입법’은 국가보안법 폐지, 사학법 개정, 신문법 개정 등인데, 당시 쟁점 입법에 대한 대야 논쟁에서 이들은 ‘논리적 언어구사’로 세를 과시했다. 학생 시절 ‘권력을 타도의 대상’이라 배우고 가르쳤던 이들이 권력을 잡은 다음 세상을 ‘정의’롭게 바꾸겠다는 시도를 한 것이다.
‘민주화 세력’의 국회 진출은 정치권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들은 논쟁적 대화술로 이슈를 생산해냈고, 현재의 쟁점 사항을 알기 쉬운 ‘국민의 말’로 번역해 국민에게 알렸다. ‘486 정치인’들의 국회 진출은 점잖은 말과 행동으로 우아하게 보이기만 했던 국회의원직을 지상으로 내려오게 한 것이다.
장의관 경기대 교수는 “과거 386 세력들은 노무현 시기에 개혁 세력으로 떠오르면서 사회 변화 추동 세력으로서의 긍정적인 측면을 구현했다”며 “정치 개혁에 기여했다는 부분은 분명하게 인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국민적 기대를 모았던 486 정치 세력은 이제 유권자로부터 환골탈태의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홍석희 기자/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