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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출마보다 뜨거운 불출마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선수들이 링 위에 오를 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선전(善戰) 해 달라’는 관객들의 요구와, 이에 ‘부응하겠다’는 선수의 의지가 스포트라이트에 녹아있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가끔은 링에 오를 때보다, 더 뜨겁게 링에서 내려가는 인사들도 있다. 먼 예로는 2011년 안철수 의원의 서울시장 후보 사퇴가, 가까운 예로는 지난 11일 오후 민주당 박지원 의원의 ‘전남지사 불출마 선언’이 있다.

박 의원의 이날 회견장엔 기자들이 바글거렸다. 평소 그의 ‘예수님도 기자가 오기 전엔 돌아가시면 안된다’는 농이 현실화되는 장면이었다. 모인 기자들은 줄잡아 50여명이나 됐다. 출마가 아닌 불출마 선언장에 말이다.

박 의원은 이 자리에서 전남지사를 ‘영광과 보람’의 자리로, 중앙정치를 ‘가시밭길’이라 했다. 두 갈래 길 가운데 본인은 ‘예수님’이 걸으셨던 ‘가시밭길’을 택하겠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또 “지방선거,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 정권 교체를 위해 한 몸 불사르겠다”고 했다. 높은 톤이지만 천천한 그의 말엔 비장함마저 묻어났다.

그러나 노련한 또는 노회한 정치인의 말은 가끔은 뒤집어야 참 의미가 보이기도 한다. 예컨데 그가 밝힌 불출마의 이유인 이희호 여사와 권노갑 고문의 ‘불출마 요청’은 그의 출마 발언 전부터 있었던 ‘정치적 상수’다. 총선과 대선의 승리는 당연과제다. ‘김대중평화학술회의’ 개최는 박 의원 외에 맡을 사람이 없다는 것은 당내에선 상식이다. 당 관계자는 “박지원은 중앙체질”이라 했다. 애초부터 ‘불출마’였던 것 아니냐는 해석은 그래서 나온다.

그렇다면 박 의원의 ‘불출마->출마->불출마’ 변화로 그가 얻은 정치적 득을 따져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우선은 ‘박지원의 세(勢)’가 확인됐다. 그의 불출마 선언엔 권 고문, 김옥두, 남궁진 등의 “큰 결단” 격려가 뒤따랐다. 그의 전남지사 출마 선언에 전남지사 후보들은 ‘화들짝’ 놀랐고, 불출마 선언엔 또다시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변곡점마다 화두의 정점엔 ‘박지원’이 있었고, 언론들 역시 바빴다. 지방언론과 중앙언론이 모두 동원됐다. ‘말바꾸기 논란’도 있었지만, 이 역시 남는 장사다. ‘본인 부고 기사’를 제외한 모든 기사는 정치인에겐 득인 법이다.

이제 관전포인트는 그의 ‘당 대표’ 출마로 모인다. 그는 관련 질문에 “아직 많이 남은 이야기”라고 했지만 박 의원의 말대로 ‘정치는 살아있는 동물’이다. 그가 걸을 ‘가시밭길’의 끝이 궁금하다.

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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