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패딩에서 다운 수거→가공→새 제품 탄생
매일 쏟아지는 헌 옷들…마냥 폐기할 수 없어
지속가능성·경제성 고려해 리사이클 택하는 기업 많아
패딩을 파기하고 다운을 수거하는 과정 [사진=김빛나 기자] |
패딩을 파기하고 다운을 수거하는 과정 [사진=김빛나 기자] |
[헤럴드경제=김빛나 기자] 지난 3일 오후 2시께 충남 천안에 위치한 한 공장. 입구부터 “쫙, 쫙” “칙, 칙” 하는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린다. 깃털이 가득한 작업장으로 들어가니 모자에 마스크를 쓴 직원들이 칼로 패딩을 거침없이 찢고 있다. 몸통, 팔, 모자 부분까지 빠짐없이 벅벅 칼을 긋던 직원이 잠시 멈추고 공기총을 꺼낸다. 공기총에서 강한 공기가 나오자 절개된 겉감 사이로 깃털들이 와르르 쏟아진다.
이 공장은 낡은 패딩에서 다시 사용할만한 다운(패딩 안에 보온용으로 사용하는 동물 털)을 수거하는 곳이다. 다운을 모으기 위해 매일 공장에서 소화하는 옷만 100㎏. 천안과 경기도 고양시 내 의류 수거함에서 수집된 패딩·이불 제품들이 주로 온다.
공장을 운영하는 원유흥 뉴본다운 대표는 “아파트 단지 같은 곳에서 수거된 옷이 이 곳으로 오는데, 이사 철에 물량이 몰리는 경향이 있다”며 “패딩 하나에서 다운을 수거하는데 대략 4분 정도 걸린다”고 말했다. 이렇게 수거된 다운은 재활용 과정을 거쳐 새 패딩, ‘리사이클 다운’으로 거듭난다.
똑같은 속도의 바람이 불때 가벼운 소재는 더 멀리 날아가는 속성을 활용해 다운을 분류한다. [사진=김빛나 기자] |
리사이클 다운은 버려진 제품에서 수집한 다운을 살균, 세척해서 다시 충전재로 만든 제품을 뜻한다. 물론 수집된 폐 다운은 먼지가 있거나 손상된 털들이 있어 바로 사용할 수 없다. 이물질을 제거하고 괜찮은 것들만 골라서 가공해야만 새 패딩·이불로 거듭난다. 다운 세탁→건조→분류/혼합 과정을 거치는데 이는 일반 다운 생산 과정과 동일하다.
수거 공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태평양물산 천안 공장은 베트남 공장에서 세척·건조된 다운들이 도착하는 곳이다. 이 공장은 다운 제조 과정의 마지막 단계 분류/혼합을 맡고 있다. 습도에 민감한 다운을 위해 공장 안에는 에어컨·히터가 아예 없다. 정전기 방지를 위해 대부분의 기계는 나무로 제작됐다.
다운을 분류하는 방식은 ‘날리기’다. “윙” 소리와 함께 거대한 기계에서 바람이 불자 눈이 내리는 것처럼 다운들이 거칠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이 기계는 똑같은 속도로 바람이 불 때 가벼운 소재는 더 멀리 날아가는 원리를 이용한 기계다. 가벼운 다운은 멀리 날아가 떨어지고, 무거운 소재의 다운은 가까이 떨어져 알아서 크기별로 분류된다. 분류된 다운은 제작될 패딩·이불 유형에 따라 나눠 포장돼 전국으로 흩어진다.
최근 수출길이 막히면서 국내 헌 옷 수거업체들은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출처=유튜버 청년고물왕 영상] |
이렇게 제작된 패딩은 ‘리사이클 다운’ 꼬리표를 달고 매장에서 판매된다. 코오롱, K2처럼 들으면 아는 패션기업도 올해 가을/겨울(FW) 시즌에 리사이클 다운을 사용했다. 성능이 떨어지는 건 버리고, 다운 재가공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리사이클 제품의 성능은 일반 제품과 똑같다는 게 업체 측 설명이다.
리사이클 다운의 가장 큰 장점은 지속가능성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패션 산업 특성상 매년 ‘한물간’ 패딩들이 헌 옷 수거업체로 쏟아진다. 롱패딩 유행이 지나면 롱패딩이, 숏패딩 유행이 지나면 숏패딩이 버려진다. 이 중 몇몇은 수출이 되기도 하지만 올해의 경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여파로 수출길이 막히면서 국내 헌 옷 수거업체들의 신음도 커지고 있다.
리사이클 다운이 가격 안정화에 기여하기도 한다. 다운 가격은 유가 가격과 비슷하다.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시시각각 바뀌는데, 주 수입국인 중국의 사정에 따라 폭등·폭락해 제조업체들이 매년 골머리를 앓고 있다. 기존 제품에서 다운을 수거할 경우 공급이 안정돼 패션 기업 입장에서도 이득이다.
이러한 이유로 패션 브랜드들은 매년 헌 패딩을 가져오면 혜택을 주는 ‘리사이클 다운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환경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 착한 소비, 윤리적 소비의 일환으로 지속가능성 제품 수요는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binna@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