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국 확대에 만장일치 승인 필요하지만 이견 존재
러시아 반발 가능성…일각선 우크라 중요성 발신하는 '신호' 역할 기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운데)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 가입신청서에 서명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젤렌스키 텔레그램] |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서방의 일원이 되기 위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추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러시아의 침공을 당한 우크라이나가 이번에는 유럽연합(EU) 가입 움직임에 속도를 내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최근 EU에 특별 절차를 통해 자국이 신속하게 가입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을 거듭해서 촉구해왔다.
러시아군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를 EU에 하루속히 가입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늘고 있어 현재의 분위기는 우크라이나에 우호적이다.
당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지난달 27일 유로뉴스 인터뷰에서 “그들은 우리 중 하나이며 우리는 그들이 EU에 있기를 원한다”라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에 화답하듯 다음날 바로 가입 신청서에 서명하고 “특별 절차를 통해 즉시 승인해 달라”고 거듭 EU에 요청했다.
그러자 기다리기나 한 것처럼 중·동부 유럽 8개 EU 회원국의 연대 지지 성명이 나왔다. .
성명에 참여한 불가리아, 체코,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는 “우크라이나가 즉각 EU에 가입할 자격이 있다고 강하게 믿는다”면서 우크라이나에 즉시 EU 후보국 지위를 부여하고, 관련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즈비그니에프 라우 폴란드 외무장관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과정을 적극적으로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루이지 디 마이오 이탈리아 외무장관은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의 폭탄에 맞아 목숨을 잃고 있다”며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요청은 정당하며 우리는 그들의 편에 서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잇따르는 지지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서는 전망이 밝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통상 EU 가입 절차는 수년이 걸리는 데다가 가입 협상을 개시하는 데에만 27개 회원국 전체의 만장일치 승인이 필요해 실현 가능성은 불투명하며 어려운 과정이 될 수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언급한 ‘신속 승인 절차’라는 건 EU 규정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일부 회원국이 공개적으로 지지를 표명했지만 EU 회원국 시민들 사이에서는 회원국 확대에 대한 거부감이 있고 이 문제를 두고 회원국 간에도 이견이 있는 상황이다.
AP는 EU 회원국들이 가까운 시일 내에 새 회원국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당장 이날 EU 집행위 대변인은 전날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 발언의 의미를 축소하고 나섰다.
에리크 마메르 대변인은 취재진에게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유럽 전반을 의미한 것이라면서 해당 발언 이후에 EU 가입에는 절차가 있다는 점을 명시했는데 그것이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도 “회원국 확대에 대해서는 EU 내에서 이견과 민감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2013년 EU에 마지막으로 합류한 크로아티아는 가입 신청 이후 10년가량이 걸린 끝에 회원국이 될 수 있었다.
EU 가입을 위해서는 신청, 공식 가입 후보국 지위 획득, 정식 가입 협상 진행, 승인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가입을 위한 준비나 조건이 충족돼 EU 가입 후보국 지위를 획득하면 EU 법을 수용, 이행할 의사와 능력이 있는지 검증받게 되며 사법, 행정, 경제 등에서 가입에 필요한 기준에 맞춰 개혁 조치를 이행해야 한다.
후보국 지위를 획득한다고 가입 협상이 개시되는 것은 아니며, EU 27개 회원국 정부가 모두 동의해야 한다. 협상 후에도 가입 승인을 위해서는 모든 EU 회원국 정부와 EU 집행위원회, 유럽의회의 지지와 각 회원국 의회의 비준도 필요하다.
이 때문에 터키, 몬테네그로, 세르비아, 알바니아, 북마케도니아는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십수 년째 가입 협상이 진행 중이다.
미래에 EU에 가입할 전망은 있지만, 아직 가입 후보국 지위를 승인받지 못한 국가들은 잠재 가입 후보국으로 분류된다. 코소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여기에 해당한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유럽판은 EU 확대와 관련해 회원국들은 항상 EU 집행위의 시각에 동의했던 것은 아니며 가입 후보국과 양자 갈등을 이유로 가입을 막기도 했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는 현재 잠재 가입 후보국 단계에도 있지 않은 상태다.
우크라이나가 아직 러시아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내전 상황이 계속되는 점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우크라이나의 경우 뿌리 깊은 부패 문제로 인해 EU 회원국들의 승인을 얻기 어려울 수 있다고 AP는 내다봤다.
우크라이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EU 가입을 추진해 왔다. 유럽 국가의 일원으로 경제·정치 통합에 참여하고 안보 동맹으로 국가안보를 보장받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이 경우 자국의 안보가 위협받는다면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금지 등을 강하게 반대한다. 이번 침공의 이유 중 하나도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정권의 ‘서방화’ 추진이라고 러시아는 밝혔다.
당장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의 발언도 러시아의 반발을 살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EU 회원국들이 지금까지 러시아와의 관계 악화를 피하기 위해 논의 자체를 꺼려왔다면 이번 침공으로 상황이 바뀌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날 한 익명의 EU 고위 관리는 로이터 통신에 내달 EU 비공식 정상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될지도 모르며, 이 문제가 우크라이나에는 이 충돌을 끝내기 위한 러시아와의 논의에서 중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종의 협상 카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관리는 “전례 없는 러시아의 공격으로 우리는 EU와 회원국들, 여론의 분노를 목격하고 있다”면서 “이것이 우리가 (우크라이나의 가입 신청에) 대응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데 하나의 요소가 될 가능성도 있다”라고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가입 절차가 신속하게 진행되지 않고 우크라이나가 실제로 회원국이 되지 않더라도 EU가 우크라이나의 가입 가능성을 열어두거나 잠재 가입 후보국이 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 경우 우크라이나가 유럽에 중요하다는 강력한 신호를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러시아에도 보내게 되리라는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EU 가입 신청서 서명 역시 상징적인 움직임으로 보인다고 AP는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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