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고 싶다…하지만 지금이 키예프 떠날 마지막 기회”
[유튜브 '로이터' 채널 캡처] |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의 기차역 플랫폼에선 아비규환의 탈출 러시가 벌어졌다.
이날 오후 2시7분 출발하는, 서부도시 이바노프란키우스크행(行) 기차에 몸을 실으려는 수천명의 사람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플랫폼에선 공포에 질린 아이들의 울음이 울려 퍼졌다고 영국 가디언 션 워커 기자는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표와 상관없이 어린이를 동반한 여성부터 그외 여성, 노약자 순서로 질서유지를 맡은 군인들이 기차 탑승을 허용하면서 승차표가 있는 사람들도 타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열다섯 살짜리 딸과 함께 기차역에 나온 미술사학자 타냐 노브고르그스카야(48) 씨는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여기 사람들을 한 번 보세요. 2차 세계대전의 한 장면을 담은 사진을 보는 것 같지 않으세요?”라고 반문하며 “이제 1주일도 안 됐어요. 한 달 뒤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이 가세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녀는 6개의 기차표를 구해 역에 나왔지만 번번이 서부행 기차에 탑승하는 데에 실패했다.
기차는 오자마자 몰려든 사람들로 인해 꽉 찼고, 일부 가족은 아이들과 엄마만 먼저 태울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러시아군의 초반 공세를 격퇴한 우크라이나군의 대응에 자신감을 가졌던 키예프 시민도 러시아의 무차별 공격 예고에 겁에 질린 모습이다.
[유튜브 'Radio Free EuropeRadio Liberty' 채널 캡처] |
예상 외의 고전에 분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키예프를 과거 러시아군의 맹폭으로 폐허가 됐던 시리아 알레포나 체첸공화국의 그로즈니처럼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러시아군도 민간시설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으로 잔혹성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 러시아군의 동향은 심상치 않다. 제2의 도시 하리코프에 집중 폭격을 가했고 키예프 방면으로 긴 군사행렬이 이동하고 있다.
러시아군이 키예프를 포위한 채 화력을 집중해 맹공격을 가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온다.
이날에는 러시아군이 키예프의 TV 방송국타워를 폭격해 무너트려 5명이 숨졌다.
방송타워는 ‘바비 야르’ 협곡 참사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시설 옆에 있다. 2차대전 때 나치 독일이 협곡에서 유태인 3만명을 포함해 15만명 이상을 학살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키예프 시민에게 ‘공습할 수 있으니 수도를 버리고 달아나라’고 경고했다.
[유튜브 '로이터' 채널 캡처] |
기차역으로 몰려든 키예프 시민 가운데엔 이날 폭격을 받아 폐허가 된 하리코프 민간인 지역의 모습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는 경우가 많았다.
노브고로그스카야 씨는 “다른 키예프 시민처럼 러시아군의 포악성을 과소 평가했고 대피하라는 말을 무시했다”며 “이제는 키예프를 떠날,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알게 됐다. 웬만하면 남아서 같이 싸우고 싶지만 아이가 있으니 떠날 수밖에”라고 했다.
아내와 함께 개를 데리고 기차를 타러 나온 ‘유리’라는 남성은 “침공 첫날 아파트 지하실에서 밤을 보냈고, 추위와 불편함을 견디다 못해 자신의 9층 아파트 화장실에서 지내왔다”며 “푸틴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하리코프의 참혹상을 보고 나서 탈출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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