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한 마트에서 시민들이 설탕 한봉지를 손에 넣기 위해 급하게 움직이는 모습. [Krishnaraj Rao 유튜브 캡처] |
[헤럴드경제=유혜정 기자] “웃기면서 슬프기도 해요. 한달 전만 해도 멀쩡했는데 지금은 1990년대로 돌아갈까봐 사재기를 한다는 게….”
러시아 서부 사라토프시 광장에서 아침부터 1시간 30분 동안 줄을 서서 설탕 한봉지를 손에 넣은 남성은 23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이같이 말했다.
이미 시내 상점에서는 설탕 같은 식료품이 동난 지 오래라 시 당국이 긴급 물량을 풀었는데, 여기에만 수백명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처럼 줄을 서서 생필품을 사실상 보급받는 듯한 상황이 마치 옛 소련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이 남성은 “생필품이 없어질까봐 두렵다”면서 “서로 하는 얘기가 설탕을 어떻게 구하는지다. 제정신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같이 갑작스럽게 품귀가 빚어진 것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서방이 내린 제제의 서곡이 될 수 있다고 가디언은 짚었다.
미국과 유럽 정부가 러시아 금융, 무역을 옥죄는 동시에 글로벌 기업도 줄줄이 러시아에서 발을 빼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생필품 대란을 시작으로 향후 1년 간 러시아에서는 경제 위축, 인플레이션 상승, 경제 고립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금융협회(IIF) 엘리나 리바코바는 “점점 옛 소련 시절로 돌아가는 중인 것 같다”면서 “일시적 충격이 아니라고 본다. 정부에 변화가 생기지 않는 한 러시아가 세계로 복귀할 수 있으리라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른 지역도 상황은 비슷하다.
옴스크 지역에서도 설탕 대란이 벌어지면서 당국은 “패닉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의도가 있다”며 음모론까지 제기하고 나섰다.
더 큰 문제는 약국에서 인슐린 같은 의약품까지 동난다는 것이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어린이 소염제를 포함한 의약품 중 80개 이상이 부족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 당국은 이런 현상이 소비자가 겁먹고 물건을 사재기하는 ‘패닉 바잉’ 때문이며, 서방 제약사 대부분이 의약품 공급을 제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당장 러시아 경제엔 먹구름이 닥쳤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리바코바는 올해 러시아 인플레이션이 20%까지 치솟을 것이며, “주민들은 기초적인 의약품과 식료품을 구하느라, 최소한의 지원금으로 살아남느라 힘겨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러시아 연간 물가상승률은 18일 현재 14.53%로 치솟아 2015년 11월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고 로이터통신이 23일 보도했다.
이는 일주일 전 12.54%에서 껑충 뛰어오른 것이기도 하다.
이유식과 의약품을 포함한 거의 전 품목에서 물가가 뛰어올랐고, 설탕과 양파 가격은 13% 이상 상승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연간 인플레이션 목표를 4%로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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