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 공격 과정에서 점령한 인근 도시 보로댠카에서 발견된 우크라이나 민간인 사망자의 시신. 손발이 묶인 채 숨을 거둔 민간인 시신의 옆에는 해당 민간인을 사살하는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총알의 탄피가 떨어져 있다. [CNN 방송 화면 캡처] |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서방 언론들이 일제히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 공격 과정에서 점령한 인근 도시 보로댠카에서 대규모 민간인 살상이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하고 나섰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5일(현지시간) 자사 기자들이 러시아군이 퇴각한 뒤 처음으로 보로댠카에 들어가 목격한 상처는 충격적이었다며 길이 3.2㎞의 큰길을 따라 늘어선 다층 건물 단지들은 크게 파괴됐고 격렬한 전투의 상처가 곳곳에 남아 있었다고 전했다.
미국 CNN 방송 등 다수의 서방 언론들도 보로댠카에 기자들을 파견, 직접 취재에 나섰다.
무너진 아파트 잔해 속에서 가족과 지인, 동료를 찾고 있는 주민들은 이 지역에서 아파트 건물 4동이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붕괴했다고 말했다.
게오르기 예르코 보로댠카시 시장대행은 지하실이나 아파트로 대피했던 수십 명이 실종됐고 잔해 아래에서 숨진 것으로 우려된다며 “추정이지만 200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보로댠카는 키이우로 이어지는 고속도로 사거리에 건설된 베드타운으로 직장이 키이우에 있는 사람들이 주로 거주하는 주민 1만3000여명의 소도시이다.
보로댠카는 이런 지리적 위치 때문에 전쟁 초기부터 러시아군의 표적이 됐다.
[유튜브 'The Telegraph' 채널 캡처] |
주민들은 2월 27일부터 러시아군 호송대가 보로댠카에 몰려들었고 우크라이나군과 지원병들이 공격하자 시내를 지나던 러시아군이 자동차와 건물에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주민 타마라 비슈냐크 씨는 “3월 1일 밤부터 러시아 전투기가 나타나 지하실로 대피했다”며 “저공비행하던 비행기가 폭탄을 투하했고 폭탄은 길 건너편 건물에 떨어졌다”고 말했다.
보로댠카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부차에서는 많은 민간인이 살해당한 집단학살 증거들이 드러나 커다란 국제 이슈가 되고 있는 것과 달리 보로댠카 등 다른 지역에서는 러시아군이 민간인 거주 건물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했다는 증거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이 문제는 이날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도 중심 논제 중 하나였다.
로즈마리 디칼로 유엔 정무평화구축국(DPPA) 사무차장은 이날 안보리에서 인구밀집 지역에서 폭발물 무기로 인해 주거용 건물과 병원, 학교, 급수시설, 전기시설 등이 파괴되면서 주민 사망과 파괴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러시아가 금지 무기인 집속탄을 인구밀집 지역에서 최소 24차례 사용했다는 믿을만한 제보를 접수했다고 밝혔다. 이어 우크라이나군도 집속탄을 사용했다는 주장도 있다고 덧붙였다.
[유튜브 'The Telegraph' 채널 캡처] |
디칼로 사무차장은 “무차별적인 공격은 국제 인도주의 법에 금지돼 있어 전쟁 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무너진 아파트 잔해 속에서 가족을 찾고 있던 안드레이 지우즈코(43) 씨는 전투로 옆 건물에 불이나 가족과 함께 대피했었다면서 같은 날 인근에 사는 어머니(66) 집도 포격을 당했는데 어디에 계신지 찾을 수가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신원 노출을 우려해 이름을 야로슬라프라고만 밝힌 한 남성은 무너진 건물이 우크라이나군이 사용하던 것이었느냐는 질문에 “무슨 군대? 내 부모님이 거기 사셨다”며 아파트와 대피소에 공습을 피하려던 많은 사람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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