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탕감’ 발언 이후 균열…대통령실·친윤 공개 견제에 잠행
“尹에 깊이 사과” 반전 시도…羅 측근, 연휴 이후 출정식 예고
국민의힘 3·8 전당대회 출마를 고심 중인 나경원 전 의원이 19일 서울 자택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김진 기자] 4선 국회의원, 당내 유일 여성 주자, 나다르크…. ‘정치 경력 21년’ 나경원 전 의원에게 붙은 수식어들이다. 나 전 의원은 당원들의 지지를 받으며 차기 당권주자 적합도 1위를 달렸다. 그러나 최근 2주 만에 ‘반윤 우두머리’ 낙인과 함께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차기 당대표 후보군에 대한 관심은 이준석 전 대표가 당 윤리위원회로부터 중징계를 받은 지난해 7월부터 커졌다. 나 전 의원은 하마평에 오른 후보군 가운데 유일한 여성 주자로 초반부터 차기 주자로 주목받았다.
나 전 의원은 초반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의원, 이준석 전 대표, 유승민 전 의원과 함께 상위권을 유지했다. 8월에는 한 인터뷰에서 “지금부터 (출마 여부를) 고민하려고 한다”며 출마 가능성을 열어놨다. 당시 전체 응답자를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각기 다른 후보가 1위에 올랐지만, 국민의힘 지지층을 대상으로 실시된 조사에서 나 전 의원이 선두를 달리면서 그가 ‘당심’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당시 당권주자들이 본격적으로 존재감 키우기에 나서면서 ‘친윤 대 반윤’ 구도가 거론되기 시작했는데, 나 전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반윤이 아니다’라 강조하며 당심에 부응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윤 대통령을 향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던 유 전 의원을 향해 “우리에게 자해행위가 돼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랬던 나 전 의원이 당심에서 멀어지기 시작한 건 이달 초부터다. 나 전 의원은 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저출산고령사회위 부위원장직으로서 신년간담회를 가졌는데, 당시 저출산 대책 중 하나로 ‘헝가리식 출산 장려책’을 언급했다. 그는 “지금도 신혼부부나 청년에 대한 주택 구입, 전세자금 대출과 관련한 지원책이 있지만, 현재로서는 불충분한 측면이 있다”며 “조금 더 과감하게 원금 부분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탕감할 수 있는 부분은 없나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첫 번째 균열은 이튿날 안상훈 대통령실 사회수석이 브리핑에서 “윤석열 정부의 관련 정책 기조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공개적으로 선을 그으면서 가시화됐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 인사가 대통령실과 조율되지 않은 정책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는 지적이었다. 특히 나 전 의원의 발언 하루 만에 대통령실 고위 참모진이 실명 브리핑으로 반박했다는 점에서 ‘당대표 불출마’를 압박하는 신호로 해석됐다.
대통령실은 정치적 해석에 거리를 뒀지만 논란은 점점 커졌다. 8일에는 익명의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나 전 의원을 향해 “대단히 실망스럽다”고 발언한 보도가 나오면서 부위원장직 해촉 가능성이 처음으로 거론됐다. 나 전 의원은 이틀간 잠행에 들어갔는데, 10일 부위원장직 사의를 표명하며 출마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갈등 국면은 대통령실이 사표를 수리하는 대신 나 전 의원의 부위원장직과 기후환경대사직에 대한 ‘해임’으로 응답하면서 고조됐다. 친윤계 인사들의 발언도 사태를 키웠다. 당내 최대 친윤 모임인 ‘국민공감’ 소속인 김정재 의원은 나 전 의원의 행보를 당내 대표적인 반윤 인사인 유승민 전 의원, 이준석 전 대표와 비교했다. ‘윤핵관’ 장제원 의원은 “대통령을 위하는 척하며 반윤의 우두머리가 되겠다는 것”이라고 저격했다.
나경원 전 의원이 13일 대한불교 천태종 총본산인 충북 단양 구인사를 방문해 총무원장인 무원 스님의 안내를 받으며 경내를 돌아보고 있다. [연합] |
나 전 의원은 윤핵관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설전을 벌이면서도 윤심에 호소하는 행보를 보였다. 윤 대통령 부부가 대선 전후로 찾은 사찰을 찾고, 연일 ‘친윤’임을 강조했다. 지난 17일에는 “대통령께서 그와 같은 결정을 내리시기까지 저의 부족도 있었겠지만, 전달 과정의 왜곡도 있었다고 본다. 저는 그러기에 해임이 대통령 본의가 아니라 생각한다”는 글을 적었다. 이번 해임 결정에 윤핵관들의 개입이 의심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당일 오후 “나경원 전 의원 해임은 대통령의 정확한 진상 파악에 따른 결정”이라고 못박으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윤 대통령이 순방으로 공석인 가운데 이례적으로 고위 참모가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대통령실의 입장은 사실상 나 전 의원의 친윤 행보에 어깃장을 놓은 것으로, 정부의 성공을 강조해 온 나 전 의원으로선 출마 명분과 동력 모두 타격을 입게 됐다. 1위를 김기현 의원에게 내준 지지층 대상 여론조사와 초선 의원 50명의 비판 성명은 당심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나 전 의원은 이후 공식 일정을 취소하고, 윤 대통령이 순방에서 귀국하는 21일까지 공개 행보를 중단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나 전 의원의 출마 의지는 꺾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나 전 의원은 잠행 사흘째인 20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깊이 사과드린다”는 입장문을 냈는데, 그를 돕는 박종희 전 의원은 “출마와 관련된 스탠스(입장) 변화는 전혀 없다”고 부연했다. 대통령에 대한 사과가 곧 ‘불출마’로 해석될 여지에 선을 그은 것이다. 나 전 의원도 같은날 “(출마 여부는) 충분히 더 숙고하고 말씀드리겠다”고 기존 입장을 이어갔다.
나 전 의원은 별다른 일정 없이 ‘조용한 연휴’를 보내고, 연휴 뒤 출마 선언을 할 전망이다. 박 전 의원은 앞서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연휴가 끝나고 보수의 상징적인 장소에서 출정식을 가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를 놓고 한편에서는 나 전 의원이 지속적으로 친윤계의 압박으로 인한 부담과 그에 따른 지지율 하락에 시달릴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 당 관계자는 “(나 전 의원이) 출마를 선언한다고 해도 정식으로 후보 등록을 하고 레이스를 완주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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