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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르사유의 장미’ 日 원작자 “앙투아네트에 영감…남장여자 설정은 외조부 영향” [인터뷰]
日만화 ‘베르사유의 장미’ 뮤지컬로
원작자 이케다 리요코 내한해 만나
“한국 배우들, 노래와 춤 기대돼”
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의 원작자인 이케다 리요코 [이케다 리요코 프로덕션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나는 장미로 태어난 오스칼, 정열과 화려함 속에서 살다 갈거야, 장미 장미는 화사하게 피고, 장미 장미는 순결하게 지네.” (애니메이션 ‘베르사유의 장미’ 주제곡)

붉은 장미가 가시 덤불을 이룬 무대. 여자로 태어나 남자로 자란 베르사유 궁전의 꽃 오스칼은 편견의 벽을 넘어 시대와 맞선다. 반 세기 전이었던 1972년, 프랑스 혁명기를 배경으로 세상에 처음 나온 이 만화는 일본은 물론 한국, 대만,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독일, 튀르키예까지 사로잡았다. 1993년엔 국내에선 TV애니메이션으로 방영, 최고 시청률이 28%까지 치솟았다.

그 시절 10대들의 마음을 빼앗은 ‘베르사유의 장미’(10월 13일까지, 충무아트센터)가 한국에서 뮤지컬로 다시 태어났다. 개막 당일 만난 ‘베르사유의 장미’의 원작자 이케다 리요코(76)는 “반 세기 전 창작된 작품이라 팬들도 어느덧 나이가 들었는데 한국에서 뮤지컬로 다시 태어나게 돼 큰 기쁨을 느낀다”고 말했다.

“평범한 아줌마인 내가 ‘베르사유의 장미’ 덕분에 세계 어디를 가도 엄청난 환대를 받아요. 팬클럽이 가장 먼저 생긴 곳도 프랑스와 이탈리아죠. 두 나라에선 자기들의 팬클럽이 가장 오래됐다고 싸우기도 하죠.(웃음)”

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의 주인공 ‘오스칼 프랑소와 드 자르제’. 왕실 호위 임무를 맡아온 자르제 백작 가문의 막내딸로 태어나 아들로 길러진 근위대장이다. 한국 뮤지컬에선 옥주현·김지우·정유지 배우가 연기한다. [이케다 리요코 프로덕션 제공]

‘베르사유의 장미’는 그간 ‘모차르트’, ‘엘리자벳’, ‘마리 앙투아네트’ 등 유럽 뮤지컬을 시도해온 EMK뮤지컬컴퍼니가 ‘제작 노하우’를 쏟아부은 작품이다. 제작사 측이 ‘유럽 뮤지컬의 종결판’이라고 말할 만큼 심혈을 기울였다. 화려한 무대 연출은 물론 출연진도 화려하다. 주인공인 오스칼 역으로 자타공인 ‘뮤지컬계 원톱’인 옥주현은 물론, 김지우·정유지가 출연한다.

이케다 작가는 “47세에 음대에 입학해 성악을 공부하며 조수미 씨를 동경했다. 일본에도 K-팝을 동경하고 흉내내는 사람이 많다”며 “한국 배우들의 멋진 목소리와 춤이 무척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 작품이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뮤지컬 무대에 오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에선 1974년부터 2014년까지 40여년 간 현지 최고의 가극단인 다카라즈카를 통해 뮤지컬로 관객과 만났다.

그는 “당시엔 순정만화의 지위가 굉장히 낮아 ‘감히 순정만화 따위’가 다카라즈카 무대에 오를 수 있냐며 찬반 의견이 분분했다”며 “하지만 이후엔 ‘다카라즈카와 순정만화의 행복한 결혼’(작가 하야시 마리코)이라는 이야기가 들었다”고 말했다.

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의 주인공 ‘오스칼 프랑소와 드 자르제’. 왕실 호위 임무를 맡아온 자르제 백작 가문의 막내딸로 태어나 아들로 길러진 근위대장이다. 한국 뮤지컬에선 옥주현·김지우·정유지 배우가 연기한다. [이케다 리요코 프로덕션 제공]

‘베르사유의 장미’는 2000만 부 이상 판매된 고전이자, 시대에 따라 달리 읽히는 명작이다. 이케다 작가는 “시작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야기에 매료된 것이었다”며 “순정만화에서 역사물은 성공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1회를 그리며 이 작품이 크게 성공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작가가 영향을 받은 책은 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평전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1932)를 쓰기도 했다. 그는 “이 만화 이전까지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재정을 파산시킨 사람이자 혁명의 원인을 야기한 나쁜 여자로 알려졌다”며 “내가 읽은 앙투아네트라는 인물은 순수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고, 죽음 직전 인생을 깨닫고 고고하게 죽음을 마주하는 삶을 살았다”고 언급했다.

작품은 주인공 오스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프랑스 왕실 근위대를 지휘하는 가문의 막내딸로 태어났지만, 집안의 명예를 위해 아버지의 뜻에 따라 아들로 키워져 근위대장이 됐다. 그를 중심으로 한 인물들의 사랑과 우정, 마리 앙투아네트의 생과 당시 프랑스 시민들의 삶을 향한 강렬한 의지와 자유를 향한 갈망을 그린다. 역사와 허구를 엮어 방대한 서사를 알기 쉽게 풀어낸 이 작품으로 이케다 작가는 2008년 프랑스 문화를 알린 공로를 인정받아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그는 “예전에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일본에 왔을 때 리셉션에 참가했다”며 “당시 대통령 수행원이 내게 와서 ‘당신의 작품을 통해 프랑스 혁명을 배웠다’, 덕분에 역사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다고 이야기해줬다”며 웃었다. 앞서 일본에서 열린 ‘베르사유의 장미’ 50주년 전시회에서도 주최 측은 “이 작품은 연애물이 아닌 역사물”이라고 강조했다.

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의 주인공 ‘오스칼 프랑소와 드 자르제’. 왕실 호위 임무를 맡아온 자르제 백작 가문의 막내딸로 태어나 아들로 길러진 근위대장이다. 한국 뮤지컬에선 옥주현·김지우·정유지 배우가 연기한다. [이케다 리요코 프로덕션 제공]

뮤지컬에서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비중이 적다. 애초 작품의 탄생 배경과는 달리 한국판 뮤지컬은 오스칼 시점의 이야기로만 구성됐다. 이케다 작가는 “처음 ‘베르사유의 장미’를 그릴 때 오스칼이 첫사랑(페르젠)에 실패했다는 것이 그의 인생에 굉장히 큰 전환점이라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한국엔 이미 마리 앙투아네트와 페르젠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이 있다는 것을 듣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며 웃었다. 그가 언급한 ‘마리 앙투아네트’ 역시 EMK 작품이다.

50여년 전에 나온 ‘베르사유의 장미’는 무대 위에서 2020년대의 시대성을 입고 재탄생한다. ‘왕실의 꽃’으로 비유됐던 오스칼은 이제 시대의 편견과 벽에 맞서는 주체적 여성상으로 더 부각된다. 뮤지컬 넘버 ‘나 오스칼’은 작품의 방향성을 보여주며 ‘결정적 장면’마다 등장한다. “여자로 태어나서 남자로 살아온 나, 누군가의 강요 앞에 굴복한 게 아니야 (중략) 백마 탄 왕자는 내게는 필요 없어, 인생의 파도는 내가 만들어”라는 노랫말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오스칼을 ‘남장여자’로 그린 것에 대해 “프랑스 혁명 때 군대에서 민중 편으로 돌아선 민병대 대장을 그리고 싶었지만, 젊은 남자 군인이 뭘 생각하고 어떻게 생활하는지 몰라 여자로 설정했다”고 말했다. 남장여자 캐릭터는 직업 군인이었던 외할아버지에게 들었던 이아기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의 주인공 ‘오스칼 프랑소와 드 자르제’. 왕실 호위 임무를 맡아온 자르제 백작 가문의 막내딸로 태어나 아들로 길러진 근위대장이다. 한국 뮤지컬에선 옥주현·김지우·정유지 배우가 연기한다. [이케다 리요코 프로덕션 제공]

이케다 작가는 한국 드라마의 애청자이자 K-컬처 전반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2007년엔 배용준이 출연한 드라마 ‘태왕사신기’를 만화로 연재했다. 이 작품은 다카라즈카의 뮤지컬로 만들기도 했다.

그는 “역사를 통해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며 “도요토미 시대에 일본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순신 장군을 비롯해 안중근과 같은 훌륭한 영웅들의 이야기를 글로 썼다”고 말했다. 1996년 출간한 ‘역사의 그림자 속의 남자들’이 바로 한국 영웅들에 관한 책이다.

“제 아버지의 고향이 나라(奈良)인데 그 이름이 한국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어요. 일본어 속엔 한국어가 여전히 많이 남아있는데, 그것이 원래 한국어였다는 것을 지금의 젊은 일본인들은 잘 몰라요. 문화는 교류를 통해 서로의 좋은 점을 꺼내고 이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계속 공부하면서 일본인들이 양국의 오래되고 깊은 관계를 이해하면 좋겠어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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